오늘 본 최고의 글(중국 정사의 효시 동양 역사학의 전범(典範))

참고도서: 사기 세가(세계 최초 완역 후 ‘사기’ 전권을 모두 아울러 전면 대조하고 바로잡은 개정판)
『사기 세가』는 제왕 아래 있던 봉건 제후들의 나라별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본기가 패권을 장악한 1인자들의 이야기라면, 세가는 결국에는 제왕에게 밀린 2인자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비극을 안고 있습니다. 갖은 굴욕에도 절치부심하여 다시 올라선 자들도 있고 권력을 장악하고도 제대로 지켜 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몰락한 자들도 있습니다.
자신이 품은 이상을 성취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사마천은 인간 삶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세상을 움직이는 질서가 무엇인지 보여 주고자 한다. 춘추시대 ‘범려’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지혜로운 인물로 사업으로 큰 부를 쌓아 천하에 이름을 드높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둘째 아들이 초나라에 가서 살인죄를 짓고 그만 옥에 갇혀버렸습니다.
‘살인했으니 죽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천금을 가진 부잣집 자식은 저잣거리에서 죽지 않는다.’ 범려는 막내아들을 시켜 황금을 잔뜩 마차에 싣게 하고는 초나라에 가서 자기 형을 구해오라 지시했습니다. 그러자 큰아들이 나서며 말했습니다. “아버지, 장자인 저를 두고 왜 막내를 보내시는 것입니까? 서운하옵니다.” 큰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을 어리석게 여긴 거라 항변하며 목숨을 끊으려 하자, 옆에 서 있던 아내가 급히 말리며 말했습니다. “그래요, 여보. 막내가 간다고 꼭 둘째를 살린다는 보장도 없는데, 믿음직한 큰애를 보내셔요? 네.”
범려는 꺼림직했지만 어쩔 수 없이 큰아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의 친구인 장생에게 한 통의 편지를 써 큰아들에게 건네며 단단히 일렀습니다. “초나라에 도착하거든 반드시 장생의 집을 찾아가거라. 이 편지를 건네고 무조건 그가 시키는 대로만 하여라.”, “네, 아버지 반드시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큰아들은 황금 마차를 끌고 초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막상 장생의 집에 도착해보니 그의 집은 초라하고 볼품없었습니다. 큰아들은 순간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도 참, 저런 사람이 무슨 힘으로 동생을 살릴 수나 있다는 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황금이 실린 마차와 편지를 장생에게 건네주었습니다. 장생은 편지를 읽더니 큰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네는 어서 이 나라를 떠나게. 그리고 동생이 풀려나온다 한들 절대 그 연유를 묻지 말게.” 장생은 비록 형편이 곤궁했지만, 성품이 곧고 청렴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초나라 왕의 존경을 받는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이튿날 장생은 조정에 가서 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폐하, 하늘의 별이 움직이는 게 심상치 않습니다. 필시 이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징조이옵니다.”, “이런,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송구하오나 폐하, 사면령을 내려 온 나라에 덕을 베푸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되옵니다.”
장생을 신뢰하지 않던 큰아들은 초나라 귀족을 상대로 물밑 작업을 하던 중 곧 사면령이 내려질 거라는 소문을 듣게 됩니다. ‘오로라, 내일이면 동생이 석방되렸다. 그럼 쓸데없이 장생에게 황금만 갖다 바친 꼴이 되겠군!’ 큰아들은 얼른 생각을 바꿔 장생에게 달려갔습니다. “아니, 자네 여태까지 떠나지 않고 뭘 하고 있었나?”, “네 사정이 있어서... 근데 내일이면 사면령이 내려진다는 소식을 들었사옵니다.” 장생은 순간 장남의 의중을 간파했습니다. “자네도 참! 내 보기에 황금을 되돌려달란 소리처럼 들리는군.”
장생이 지난번에 받았던 황금을 내어주자 큰아들은 재빠르게 이를 챙겨 떠나 버렸습니다. 이에 치욕을 느낀 장생은 즉시 초나라 왕을 찾았습니다. “폐하, 범려의 아들이 사람을 죽이고 옥에 갇혀 있는데 그의 큰아들이 돈을 뿌려대며 우리 대신들을 매수하고 있다 하옵니다.”, “어허, 그게 무슨 소리인고?”, “폐하, 송구하오나 이번 사면령은 모두 범려의 책략으로 대신들이 왕을 움직여 사면을 이끌어냈다는 후문이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초나라 왕은 크게 분노라며 말했습니다. “여봐라! 당장 범려 아들이란 자의 목을 쳐라.”
큰아들은 죽은 아우의 시체를 안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보고 가족들이 대성통곡하며 울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범려만은 의외로 태연했습니다. “내 정녕 아우를 죽게 할 줄 알았다. 너는 젊어 나와 동고동락하며 재물의 귀함을 잘 알고 있다. 네가 동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그 돈이 아까워 버릴 수가 없었을 뿐이다. 허나 막내는 돈을 쓸 줄만 알지 어떻게 생겨나는지는 모른다. 해서 돈에 미련이 없는 막내를 보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는 모두 내 잘못으로 어쩔 수가 없구나”
바둑에는 ‘봉위수기(逢危須棄)’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위기에 처하면 버리라는 뜻입니다.’ 버려야 할 때 버리지 못하면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옵니다. 위기 상황일수록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0여 년의 시공을 초월한 사마천과 독자와의 만남의 교두보를 더욱 탄탄히 확보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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