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최고의 글(문장과 문장에 호흡을 불어넣으며 적당히 뜨거운 음식을 먹듯 찬찬히 곱씹어 읽다 보면, 각자의 ‘언어 온도’)

참고도서: 언어의 온도(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쯤 될까요)
사랑하는 사람과 시선을 나눌 수 있다는 것, 참으로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대를 자세히 응시하는 행위는 우리 삶에서 꽤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래서 ‘관찰 = 관심’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기도 합니다. 사람은 관심이 부족하면 상대를 쳐다보지 않습니다. 궁금할 이유가 없으므로 시선을 돌리게 됩니다. 외면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보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은, “그쪽에 관심이 없어요” 혹은 “뜨겁던 마음이 어느 순간 시들해졌어요.
아니 차가워졌어요”라는 말과 동일하게 쓰이곤 합니다. 그래서일까. 돌이켜보면 관심이 멈추던 순간, 상대를 향한 관찰도 멈췄던 것 같습니다. 극지에 사는 이누이트(에스키모)들은 분노를 현명하게 다스립니다. 아니 놓아줍니다. 그들은 화가 치밀어 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무작정 걷는다고 합니다. 언제까지일까요? 분노의 감정이 스르륵 가라앉을 때까지. 그리고 충분히 멀리 왔다 싶으면 그 자리에 긴 막대기 하나를 꽃아 두고 옵니다.
미움, 원망, 서러움으로 얽히고설킨, 누군가에게 화상을 입힐지도 모르는 지나치게 뜨거운 감정을 그곳에 남겨두고 돌아오는 것입니다. 어느 책에서 이 얘기를 읽고는 내 분노가 훑고 지나간 스키드 마크를 되짚어 보았습니다. 가끔은 노여움을 놓아주지 못하고 붙잡으려 한 것 같아서, 그런 기억이 떠올라서 얼굴이 불그스레 달아올랐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활활 타오르던 분노는 애당초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잠시 빌려온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라는 냉각기를 통화해서 화가 식는 게 아니라, 본래 분노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간 것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빌려온 것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므로 빨리 보내줘야 합니다. 격한 감정이 날 망가트리지 않도록 마음속에 문 하나쯤 열러 놓고 살아가야겠습니다. 분노가 스스로 들락날락하도록, 내게서 쉬이 달아날 수 있도록. 화를 참지 못하면 크나큰 화를 당하기도 합니다. 말과 글에는 나름의 온도가 있습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릅니다. 적당히 온기 있는 언어는 슬픔을 감싸 안아줍니다. 세상살이에 지칠 때 어떤 이는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털어내고, 어떤 이는 책을 읽으며 작가가 건네는 문장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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