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최고의 글(법관들은, 시민들은 냉소의 늪에서 빠져나와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까)

참고도서: 판사유감(법원을 둘러싼 다양한 군상과 재판을 통해 알게 된 우리 사회와 사법부 문제, 판결과 양형의 과정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들려주는 스테디셀러)
자신이 안다고 생각하는 것도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일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고 유보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는 것 또한 지성적인 태도일 것입니다. 이에 반해 자신이 믿고 있는 것, 또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앎과 혼동하는 것, 더 나아가 자신이 믿고 있는 것, 또는 바라는 것에 저촉되는 사실을 무조건 배척하는 행위는 갈릴레이를 법정에 세웠던 바로 그 반지성 아닐까요.
2001년, 하리수 씨가 모델로 데뷔했을 때 우리 사회는 신인류를 발견한 듯 놀라워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성 소수자들은 새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존재했지만 외면당해왔을 뿐입니다. 하리수 씨의 활발한 활동과 잇따른 기사들을 보며 그들에 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1996년에 선고된 한 대법원판결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은 트랜스젠더가 윤간을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1,2심은 물론 대법원은 그녀가 강간죄의 객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강간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당시 강간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자’라고 객체를 여성에 한정하고 있었는데, 피해자가 법적으로 여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법원은 여성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기준으로, 성염색체, 내부 생식기, 신체의 외관, 정신적인 성 등 모든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하지만 기준의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보수적인 태도였습니다.
피해자가 외관상 여성의 신체 구조를 갖추었고 정신적으로도 여성화되었으며 여성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여성의 성염색체를 갖추고 있지 않음은 물론 난소와 자궁이 없으므로 임신과 출산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점 등을 들어 여성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전국 각지 법원에 성전환수술을 받은 이들의 성별 변경을 위한 호적정정 신청이 접수되고 있었지만, 마찬가지 이유로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저자는 여러 나라에서 트랜스젠더의 성별 변경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것과 우리 학계에도 이를 주장하는 연구자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해(2001년) 가을, 법원 내부 판례연구회에 발표할 기회가 있었던 저자는 이 문제를 검토한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대법원 판견에 반대하는 이유 (강간죄의 대상이 여성으로 한정된다고 하여 생식 능력이 있는 여성일 것까지 요건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난소 제거 수술을 받은 여성, 불임인 여성이라고 하여 강간죄의 객체에서 배제되는가? 본 건 피해자가 피고인들에게 강간당한 것은 XX염색체도 아니고, 난소도 아니고, 과거의 육체도 아닌 현재의 육신이며, 그로 인하여 황폐해지는 것은 자신을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는 피해자의 정신과 마음이다.)]
이 논문을 처음 발표하던 세미나에서 법관들의 의견은 찬성 반대가 팽팽했지만, 이후 많은 분이 공감을 표시해주셨습니다. 우리의 법원은 평소 보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 번 움직이면 성큼 큰 걸음을 내딛기도 합니다. 2002년 7월, 부산지방법원 고종주 부장판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성전환자의 성별을 변경하는 호적정정을 허가했습니다. 전국 곳곳의 법원에서 같은 취지의 결정이 잇따랐고 2006년에 성전환자에 대한 호적정정을 허용하는 대법원 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2009년에 이르러 성전환자에 대한 강간죄를 유죄로 인정하는 판결이 최초로 선고되었고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됨으로써 매듭지어졌습니다. 먼 훗날에나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던 변화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 변화의 물결 한구석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기억만으로 가슴이 뿌듯해지곤 합니다. 저자는 실제 벌어지는 재판과 판결 과정에서 판사들이 겪는 갈등과 고민, 재판을 통해 알게 된 우리 사회와 사법부 문제 등 법원을 둘러싼 다양한 군상을 보여줍니다.
법관 집단은 삼십대부터 육십대까지 다양한 연령과 경험치를 가진 이들이 대등한 법관이라는 지위를 공통적으로 가지는 매우 특수한 집단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기업을 비롯한 일반적인 집단에서의 모습은 연령이나 경력, 상하 직급이 비례하여 각자의 위치가 수직적으로 구분되어 있지요. 상급자와 하급자 개념이 존재하고 지휘 감독 관계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법관은 그 권한과 지위가 기본적으로 대등합니다. 삼십대 초임 판사도 판사고, 정년을 앞둔 육십대 판사도 판사입니다.
법원장이 아니라 대법원장도 행정적인 부분이 아닌 재판 내용에 관해서는 절대 관여할 수 없습니다. 차가워 보이기만 했던 사각 건물 안에서는 매일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시민들의 사법부 불신이 고조되는 가운데 저자가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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